2019아일랜드(+모스끄바) 여행

2019 아일랜드(+모스끄바) 여행 제2부(7월 14일)

평방미터 2020. 4. 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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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요즘 FutureLearn 사이트를 통해 아일랜드어(주로 문스터에 집중하고있다. 얼스터나 코노트는 미묘하게 발음이 달라서 내가 더 헷갈려) 스텝 바이 스텝 배우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을 가기 전에 아일랜드어를 배우기 시작할걸 그랬다. 단순히 한 나라의 수도만 방문한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생전 가보지도 못한 나라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다녔기 때문에 분명히 도움이 되었을텐데...특히 영국에 가까운 동부 해안과 다르게, 아일랜드 남서부지역은 아일랜드어 사용 권장을 하고 있는 지역이라 돌아다니는 내내 아일랜드어로 쓰여진 표지판을 많이 보았다(현재 2020년 04월 02일).




 

더블린은 항구 도시 답게 갈매기가 아주 많았다. 더블린에 간 목적은 물론 아크투섬의 중간 기착지라는 점 때문이었지만(물론 아일랜드에는 더블린 공항 말고도 국제 공항이 있다. 다만 운항 노선이 매우 한정적이다) 무엇보다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켈스의 서를 꼭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그 김에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의 롱 룸(그렇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에 등장하는 그 제다이 도서관을 여기서 찍었다...)도 보고 말이다. 우선 숙소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에 들러서, 더블린의 교통카드 'Leap' 자동판매기에서 교통카드를 사고 톱업을 했다(러시아는 삼두마차, 영국은 굴Oyster, . 트리니티 칼리지는 더블린 시내의 중심에 있었는데, 들어갔더니 현지 대학원생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역사 가이드투어+켈스의 서 관람 패키지(15유로)를 팔고 있어서 티켓을 냉큼 샀다. 시간이 좀 남아서 교정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여름 햇볕이 잔디밭에 정말 강렬하게 내리쬐었다.

 


학생 가이드투어라 별 기대는 안했는데, 생각외로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대학원생들이 옛 트리니티 칼리지 학생들이 입었던 로브(cloak?)를 입고 나왔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검은 로브같은게 아니라 어깨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는 형태였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시계탑 근처에서 각각의 건물 앞으로 돌아다니면서, 건물들이 당시에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식당, 기숙사, 도서관, 시험용 건물 등)를 얘기해주었다. 시험에 허덕이던 대학원생이 교수를 총으로 쐈던가(아니면 교수가 학생을 총으로 쐈던가) 하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여행한지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정확하게 기억에 나질 않아 아쉽다. 가장 인상적인 일화는 최초 여성대학생 입학 이야기였는데, 당시 학장이 선구안을 가져서 여학생 입학을 허용한게 아니라 외압에 의해(이 얼마나 꼴사나운 일인지!) 허용한터라 입학 승인서에 서명을 하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실제 여학생을 입학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바로 그 말을 한 학장이 심장마비로 죽고나서 정확힌 한달 뒤에 최초의 여학생이 입학했다고! 그래서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여학생들은 요즘도 졸업할 때 그 대머리 교장 동상(교내에 동상이 있었고 바로 이 얘기를 그 동상 앞에서 들었다) 입술에 립스틱을 칠하고 셀피를 찍으며 고인모욕(ㅋㅋㅋㅋ)을 시전한다고 한다.


교정을 이리저리 돌면서 설명을 다 듣고 버클리 도서관 앞에 있는 '구 속의 구' 조형물 앞에서 가이드 투어는 마무리되었다(내 마음에 가장 든 건물은 조형물 왼편에 있는 박물관 건물이었는데, 베니스의 비잔틴 건축양식을 본따 만든 건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건물 외벽에 108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어 정말 아름다웠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교정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슬슬 켈스의 서를 보러갈까 생각하며 갔더니...티켓이 있어도 일단 줄을 서야 하는거같길래 줄을 서서 지구 반대편의 햇볕을 쬐며 트윗을 하였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켈스의 서는 서기 800년 경 아일랜드(현재의 아일랜드 섬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일부 지역이 당시 아일랜드 왕국의 영토였고 정확하게 이 작품이 만들어진 년도와 장소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에서 제작된 종교서적으로, 네 복음서와 예수의 전기 등이 라틴어로 쓰여지고 또 아름답게 채식되어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드디어 켈스의 서가 보관되어있는 구 도서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전시 설명들을 읽은다음에 유리장 안에 갇혀있는 실물로 머리를 기울이며 그 아름다운 금장 장식들과 일루미네이션, 라틴어 글귀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특히나 요즘 아일랜드어를 배우면서 함께 켈스의 서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는데, 좋은 사이트가 있어 링크를 함께 올려본다. [x]


켈스의 서 전시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본 다음(다들 고개를 쭉 빼들과 어떻게든 열심히 보려고 하더라...나도 이걸 보기 위해 일부러 온 만큼 열심히 두 눈에 일루미네이션을 담았다), 이어진 통로를 통해 드디어 제다이 아카이브(안그래도 오늘부터 스타워즈 오따쿠 관둔다고 했는데...) 롱 룸을 들어갈 수 있었다. 복도식 도서관인데 양 옆에 서가가 있고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알파벳 순서로 책이 꽂혀져있었다. 어떤 분류방법을 쓴건진 모르겠지만, 1872년 이전의 책들은 온라인 색인 사이트에서 검색하여 찾는게 가능하다는것같다. 롱 룸의 흥미로운 점들은 서가 앞에 유명 인물들의 대리석 흉상이 있던 점인데,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존 로크와 셰익스피어의 흉상도 있었다(리스트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롱 룸에는 1916년 부활절 주간에 아일랜드 인들이 독립을 위해 영국에 대항하는 무장봉기를 일으켰을때 인쇄하였던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선언서" 실물과 15세기에 만들어진 하프 조각상(아일랜드를 상징한다)도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 옆에는 당연히 기념품 코너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념품들은 소비자가 구매하고 싶어할 만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으로 구매할수도 있겠지만, 더블린에 온 김에 사보자고 도록을 샀는데 그날 저녁에 보니 불란서말 버전을 사서 다음날 더블린을 떠나기 전에 교환했다. 이 교환했을때도 엄청웃겼는데, 내가 실수로 불어판을 사서 영어판으로 교환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직원들이 하나같이 "암요! 불어보단 영어죠^^!" 이래갖고 아무리 아일랜드가 영국이랑 사이가 안좋다지만, 그래도 공동의 적인 푸랭스 앞에서는 함께 가는구나 싶었다(ㅋㅋㅋ). 도록 사고 대학 내 카페테리아에서 요깃거리(아오리 사과랑 빵 몇개)를 사갖고 교내 벤치에 앉아서 먹었는데, 누가 들어도 전형적인 모스코비치(모스크바에 사는 러시아인) 말투로 느릿하고 조곤조곤하게 대화하는 러시아 할머니 몇 분이 내 맞은편에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계셨다. 아마도 내가 타고 온 비행기를 타고 오신 분들 같았다.

 


적당히 배도 채우고 비타민D 합성도 했겠다, 다른 재미있는 박물관 없나 찾아보다가 체스터비티 갤러리에 갔다. 1950년 당시 채광계의 큰손이었던 알프레드 체스터비티 경이 개인 컬렉션을 모아 세운 이 갤러리(도서관)는 더블린 성 건물 부지에 작게 세워져있지만, 특히 서유럽과 이슬람 종교 서적이 유명하다. 나 또한 일루미네이션 때문에 갔던건데, 서유럽 쪽 보다는 이슬람(페르시아) 코란 컬렉션이 풍부해서 2016년에 이어 또 아시아인이 아시아 문화재 보려고 서유럽에 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좀 웃기면서도 슬펐던 때는 동아시아 섹션을 들어가서였는데, 동아시아=중국 아님 일본 문화재만 가득했고 조선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뭔가 '음 네녀석들은 조선 물건은 약탈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래도 오류는 몇가지 있었는데, 가령 한국도 힌두이즘 영향권에 속했다거나(사실 완전히 틀린말은 아니지만) 하는 설명글들이 있었다. 하필 내가 들어갈 때, 백인 가이드가 중국 황제용포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면서 '자수에 다 의미가 있다' 어쩌구 얘기하다가 나랑 딱 눈이 마주쳤는데, 왠지 눈을 피하기도 했더랬다. 그래 이놈들아 이 모든 책들과 두루마리가 바로 니네 조상들이 쌔벼온거다! 체스터비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미카엘 이콘이었는데, 아래 둘 중에 정확히 어떤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체스터비티에 전시된 일루미네이션에 눈돌아간 나머지 미리 예약해놓은 기네스공장투어에 늦고 만 사람(더블린 시내 버스 어플로 시간 확인하면서 간 건데, 계속 연착되어서 믿을만한게 못되더라). 어떡하지 하다가 비영어권 관광객인 점을 어필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가보니깐 기네스 공장 투어는 꼭 시간을 맞춰 가야하는게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입구에서 안내해주시는 분이 쾌활하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들어가라고 했더랬다. 모스크바와 더블린을 연속으로 경험해보니, 진지하고 마음따뜻한 모스코비치들과 변화무쌍한 날씨 아래 쾌활한 더블리너들의 특징이 보이는거같았다.

 

 

기네스 공장은 말 그대로 '술꾼의, 술꾼을 위한, 술꾼에 의한' 장소였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건 다름아닌 1층에 펼쳐져있는 기념품 코너! 기네스 로고가 그려져있는 온갖 티셔츠와 물건들이 가득했다. 어떻게든 짐을 늘이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 투어를 시작했는데, 별건 아니었고 옛 공장 내부를 기네스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전시들로 완전히 바꿔놓았더랬다(실제 공장은 아마 다른 부지로 옮긴 모양인데, 그래서그런지몰라도 더블린 도시 전체가 기네스로 먹고산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이파리가 초록색인, 실제 살아있는 홉을 보고 기네스의 원료인 물이 수도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 강에서 온다는 사실도 알게되고, 보리와 몰트, 이스트 등...여러 볼거리가 많고 액티비티(가령 어떻게 하면 기네스를 잔에 완벽하게 따를 수 있나 체험하기 라던가)가 다양해서 그런진 몰라도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았다. 사실 내가 노린건, 기네스 투어 티켓에 함께 붙어있는 '기네스 1파인트 쿠폰'이었는데, 기네스 투어가 끝나면 이 쿠폰으로 투어 건물 최상층에 있는 라운지에서 "아일랜드 더블린 산 기네스" 한 잔을 마실수가있다! 기네스 맛도 맛이지만, 최상층의 이 라운지는 360도 통유리창으로 되어있어서, 탁 트인 더블린 전경을 보면서 기네스를 마실 수가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비록 서버들의 수북한 턱수염때문에 자꾸만 '남자 수염에는 개보다 더 많은 박테리아가 산다'는 격언이 떠올랐지만...). 기네스를 마시면서 멀리 윔블던에서 열리고 있을 페더러 경기를 생각했더랬다.

 


더블린 와서 기네스 공장 투어도 하고나니, 남은 시간에 뭘 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아리 애스터의 신작영화 <미드소마>를 보기로 했다. 씨네월드 더블린이라는 영화관에 가서 봤는데, 해외카드라 그런지 키오스크에서 카드가 안먹혀서 카운터 가서 결제했고 한국의 CGV 마냥 영수증으로 된 티켓을 받았더랬다. 영화관 건물 1층에 스타워즈 배틀포드(서울에서는 고양 스타필드에만 있던 바로 그것!)가 있길래 야 여기도 있네~ 하면서 신기하게 보았다. 해외 영화관에서 처음 보는 영화라 궁금하긴했는데, 멀티플렉스는 어느 나라를 가도 비슷한거 같았다; 자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하기사 일요일 저녁은 영화를 보러 오기 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게 좋을테니까. 자막이 없긴 했지만(스웨덴어는 영자막으로 나왔다) 적당히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고, 영화 내용이 내용인지라 막이 내리자마자 백인 커플이 후다닥 관을 나가는걸 목격하기도 했다(본격 커플브레이커영화).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모스끄바에서 산 마뜨료슈까를 감상한 다음, 지구 반대편에서 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