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아일랜드(+모스끄바) 여행

2019 아일랜드(+모스끄바) 여행 제3부(7월 15일)

평방미터 2020. 4. 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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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 있는 동안은 아침을 도미토리 숙소 조식(토스트 빵과 바르는 버터, 여러 잼(주로 딸기잼과 월귤잼), 우유와 시리얼, 오렌지주스 등)으로 해결했었다. 여행 기록에 따로 쓰질 않아서 생각나는김에 얘기해본다.

 지나가면서 들른 가게에서 찍은 더 스타 신문(왼쪽) 과 타르트를 기다리면서 찍은 사진
 퀸 오브 타르트의 레몬 머랭 타르트

전일에 샀던 '켈스의 서' 도록을 불문판에서 영문판으로 교환하고, 위스게베하(Uisge na beatha, 게일어로 생명의 물이라는 뜻인데 위스키라는 말의 어원이다) 대신에 더블린에서는 먹부림할게 뭐가 있나 찾아보다가 아침부터 동네 맛집이라는 타르트집에 가기로 했다. '퀸 오브 타르트'는 본 매장이 매우 작아서 긴가민가했는데, 내가 도착했을때 딱 한 자리 남아있었고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가 빈자리가 없어 발걸음을 돌리는걸 보기도 했다.

 

이래저래 후기를 찾아보니 모두가 레몬머랭타르트를 추천하고 있길래, 레몬머랭타르트와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노라니 엄청난 크기의 머랭이 얹어진 타르트가 그 위용을 뽐내며 등장했고,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옆에서 브런치를 먹고있던 사람이 내가 주문한 이 타르트가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많이 달긴 했지만, 그만큼 맛있었다.

제임슨 위스키 공장 가이드 투어 입구

맛있는 타르트로 배를 채웠으니, 이제는 마실 시간이었다(!). 더블린에서는 위스키 투어로 갈 곳이 꽤 많았는데, 크게는 두 곳을 꼽을 수가 있다. 한 곳은 아이리시 위스키 박물관 투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임슨 아이리시 위스키 공장 투어였다. 둘 다 후기를 찾아보니 괜찮아, 고민을 좀 하다 결국 후자를 선택했는데 제임슨 아이리시 위스키 브랜드 자체에 대해 내가 좀 관심이 있기도 했고, 아무래도 사기업 쪽이 서비스가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실제로 위스키를 생산하던 공장이었지만, 지금은 생산 기기 및 인력은 전부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고 대신에 공장 부지가 박물관 및 투어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래저래 쓰여있는 설명도 재미있긴 했지만,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더니 안내를 받아 재미있는 프레젠테이션(월요일 오전 11시에 둥글게 둘러앉아 제임슨 아이리시 위스키 브랜드의 역사와, 스카치 위스키와는 차별되게 아이리시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었다)도 보고, 미국/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대표적 위스키의 차이를 맛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설명을 시작하기 이전에, 가이드 투어 참가자들의 출신지를 얘기하기도 했는데 한 70%는 미국인, 25%는 유럽인, 5% 정도인 나만 아시아인이었다(싸우스 코리아라고 얘기해주었더니 놀라던). 가장 재미있던건 역시나 각 지역의 위스키 맛의 차이를 확인했던 때였는데, 나는 아이리시 위스키에서 스파이시한 맛이 나는것 빼고는 차이를 잘 모르겠던. 가이드가 귀뜸으로 우리가 먹은 위스키 브랜드는 각각 잭다니엘(미국 위스키), 조니 워커(스카치 위스키), 제임슨(아이리시 위스키)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위스키 투어에서 다른 설명은 무던하게 들으면서 넘어갔는데, 부활절 봉기 때(Éirí Amach na Cásca, 아일랜드 인들이 독립을 위해 1916년 4/24~4/30일 부활절 주간동안 무장봉기한 사건이다. 앞서 트리니티 칼리지 롱 룸에서 보았던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 부활절 선언문도 이 때 우체국 앞에 붙여졌다) 2주간 아일랜드 인들은 공장에 일하러 가는것도 출입금지 당했었는데 이 때 그 2주간의 급료를 전부 제임슨 사장이 지불했다던 얘기가 무척 인상깊었다. 제임슨 위스키 공장은 아일랜드 독립 투쟁의 본거지였다고...당시의 평생 직장이었다고 하니 그 분위기를 알 만 했다. 투어 끝은 역시나 기념품 가게! 기념 삼아 위스키 미니병 4개짜리를 30유로에 샀는데, 여행 내내 짊어지고 다니다가 한국에 돌아가서 잘 마셨다고 한다.

킬마이넘 감옥 안내 건물에 있는 옛 재판장 모형과 알 수 없는 표지판

그 다음으로는 킬마이넘 감옥 가이드 투어를 가 보기로 결심했다. 아일랜드인들에게 킬마이넘 감옥이란, 한국의 서대문형무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일랜드 독립 운동(부활절 봉기 등) 당시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감옥으로 잡혀갔다. 킬마이넘 감옥으로 이동하는 동안, 아주 큰 기네스 공장이 있어 '기네스가 더블린을 먹여 살리는 구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가이드북에 킬마이넘 감옥 가이드 투어는 예약이 안된다고 일찍오라는 말이 있었지만, 솔직히 월요일 낮 12시에 대체 어느 누가 감옥 견학을 오겠냐고 생각하며 천천히 갔는데...열두시 즈음에 도착했지만 줄을 서서 표딱지를 받았을 땐, 오후 3시 가이드 투어가 가능하다고 답변을 받았더랬다. 2층에 카페도 있고 1층에는 재판장 모형도 있었는데, 대충 둘러보고는 날씨가 좋아 킬마이넘 병원 근처의 공원을 돌아다녔다.

 

보통 유럽여행을 하면 육로로 이동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영국과 아일랜드 여행(특히 수도 외 지역은 더하다)에는 동북아시아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공원을 천천히 거니는 동안 갑자기 모스끄바 굼 백화점에서 이래저래 자주 마주친 중국인들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다들 리츠 칼튼 호텔에서 브런치 먹을 시간인가보다, 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킬마이넘 병원 건물 근처에서 루시앵 프로이드 작품 전시가 있었지만, 그닥 관심이 없어서 넘어갔다.

드디어 오후3시가 되어 가이드 투어를 시작했는데, 감옥은 우리가 보통 알고있는 판옵티콘 구조로 된 방만 있는게 아니라 아예 창문도 없는 토방같은 곳도 있더랬다. 가이드 말로는 바로 그런 방에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들을 가둬놓았다고. 왜냐면 빛=신의 은총이기 때문에 지하에 가둬서 신의 은총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킬마이넘 감옥에서 단식투쟁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헝거>가 떠올랐다.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패스밴더 배우가 주연을 연기한것으로 아는데 바로 그 인물이 투쟁하던 당시에 그를 비롯한 몇명이 동성애자인게 밝혀져서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나가떨어지고 그랬다던.

 

그당시 여성독립운동가들도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영국인들이 여자까지 처형시키면 자기들이 너무 못돼보이니까(아니 악독한 짓 한다는 건 알았던 모양이지?) 무기징역으로 바꿨고, 그런 소식에 여성독립운동가 당사자들이 너무 분해했다고 한다. 아니 죽지 않아도 되면 기뻐했을텐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이게 근본적인 성차별 문제기 때문이었다(여성에게도 남성과 동일하게 대접하라).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바로 이 여성독립운동가는 무기징역 선고 이후 결국 킬마이넘 감옥에서 석방되어 아일랜드 독립 후 그 당시 최초로 정부 장관까지 올라간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아쉬운 것은 그 때 마저도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었다는 사실!). 투어를 다니는 내내 긴 붉은색의, 심한 곱슬머리의 직원(의 이름은 레베카라고 한다. 머리카락 때문에 엔피스네스트 떠올림)이 이 모든 이야기를 울분에 차서 말하시는데, 지구 반대편에 살고있는 나도 좀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아일랜드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혹시라도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 대해 궁금한 분들께는 넷플릭스 드라마 <리벨리언>을 추천한다.

투어를 다 하고 박물관까지 보고 나서 건물에서 나오는데 직원들이 관광객인지 아무튼 사람들한테 오늘 투어 다 끝났다고 안내를 했다. 감옥 가이드 투어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다니...아일랜드 역사 중에서 독립 운동 부분을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킬마이넘 감옥 투어를 끝마치고, 난 다시 숙소로 돌아가 짐을 갖고 더블린의 휴스턴 역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짐을 갖고 숙소에서 나오는 데 갈매기가 길 한복판에 서서 차를 막는 진풍경을 목격하기도 했더랬다. 움직이는 동안 더블린 트램(이름은 루아스라고 한다)을 탔는데, 정류장에 있는 카드판독기에 Leap 카드를 찍고 타고, 다시 내리고나서는 또 그 내리는 정류장에 있는 카드판독기에 Leap 카드를 찍어야 한다. 말하자면 한국처럼 카드판독기가 열차 안이 아니라 정류장에 설치되어있는 셈. 게다가 문에 달린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니, 생소했다.

기차표는 인터넷으로 예매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휴스턴 역 역무원에게 물어본 게 다행이었다. 티켓을 보여주면서 이 플랫폼이 맞는지 물어봤더니, 완전 반대방향으로 기차를 탈 뻔 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4명이서 앉아가는 자리 중 창가자리를 예약했는데, 기차 테이블 맞은편에 웬 탈색한 멘도(?)같은 할배가 앉아서 좀 웃겼다. 기차는 마치 무궁화호 처럼 내내 시끄러웠고(옆에 앉은 아이들이 이어폰도 안 쓰고 동영상 보고 게임 하는 통에 어딜가나 아이들은 아이들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창문 밖으로 보는 아일랜드 하늘은 높고 땅은 푸르고 넘실거려 정말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했다. 기차 복도에서 메이처럼 팔뚝에 흰색 원판의 당뇨 체크기(매번 손을 찌르지 않고도 당뇨 체크를 할 수 있는 기기다)를 붙인 중년여성분을 발견해 반갑기도 했다.

수국! 수국! 망할 수국!(자세한 레퍼런스는 영치-피오나 힐을 참고)

내 아일랜드 일정은 말 그대로 동-서를 가로지르는 거였는데, 한번에 더블린-포트매기까지 갈 수가 없어서(왜냐면 차 편이 없다...아일랜드 서부는 동부에 비해 발달이 덜 되었다), 중간기착지인 킬라니 라는 도시에서 한 밤 묵기로 했다. 그래서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다보니...너무 잘못된 선택을 한게 문제가 되었다. 일반 가정집에 2층 침대 몇 개 들여놓고 장사하는 곳이어서, 밤에 도착해갖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든데다가 와이파이도 1층에 있는거라(난 0층에 묵었다) 잡히지도 않던. 아침에 일어나서 씻으며(것도 앞사람을 아주 오래 기다려야 했다), 빨리 이 숙소를 떠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중간기착지로 선택한 킬라니에 대한 자세한 소감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