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후기

잡지 후조 #01 후기(를 빙자한 고백들)

평방미터 2016. 11. 1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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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작년 1월달에 쓴 글인데, 지금과 이 때를 비교해보면 내 생각이 많이 달라졌구나 느낀다.

*주의*: 막말 있음. 님의 견해와 내 감상은 다를 수 있음.

서론

트위터를 하기 전에도 나는 내가 누굴까라는 생각을 꽤 자주 했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이력서의 ‘취미’ 란을 볼 때는 더욱 심했다. 살면서 비덕친보다는 덕친을 많이 사귀었지만, 일명 '머글'이라 불리우는 일반인들을 볼때마다 '저게 취미의 영역이라면 내가하는짓은 뭐지'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같은 영화 4DX, 3D, 2D 버전별로 열 번 넘게 극장에서 보는걸 비덕친구들은 '존중'하기는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덕후다, 후조시다, 잡덕이다] 이런저런 정의들에 익숙해졌을 때, 그렇게 잡지 후조 텀블벅 후원을 보게 되었다.

후원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시간이 흐르긴 많이 흘렀구나'란 생각이었다. 동인녀(同人女)라는 명칭이 주류였을때만해도, 대부분 물밑을 지향하며 폐쇄적인 커뮤니티 속에서 살았다. 그점에는 '왜색에 물든 청소년들'이라는 한국사회 전반의 시선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도 그때엔 그렇게 생각했다. 물밑덕질은 물밑에서 하자고, 굳이 긁어부스럼 만들필요는 없지않냐고. 탈덕하려고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못했지 나도알아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어느 날, 그래도 밥대신 좋아하는 영화 보러가겠다고 극장에 갔다가 금반지를 하나 주웠다. 그걸 팔아서 회지제작에 보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양심없는 짓이었는데 공소시효도 지났고 지금 그 극장은 없어졌으니 뭐 말해도 괜찮겠지. 아무튼 그때 한번뿐인 인생, 좋아하는거라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트위터도 도와주었다. 나만 그런 고민을 하는것도 아니었고, 이미 고민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의 벽장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그렇게 물어뜯지 않는다. 내가 폐녀자라서 싫다는 사람이 있다고? 안보면 그만이다. 그 사람 말고도 세상은 괜찮은 사람들로 차고 넘쳤으니까. 생각해보니 이거 우리옵빠랑 똑같잖아; 

본론

직장인 후조 4인 인터뷰라니! 트위터에서 알음알음 본 분들도 있고, 팔로한 분들도 있었다. 덕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고, 아닌 분들도 있었다. 나는 일과 덕질을 철저히 분리하고 일의 스트레스를 덕질로 푸는 쪽이었지만, 4분 모두의 인터뷰를 재미있게 읽었다. 생활과 덕질, 현실과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살아가는 분들 얘기를 지면으로 읽는건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

서림님의 아카이빙 프로젝트는 되게 생소했다. 주류/비주류 문화가 있지만,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 - 일기장, 인쇄된 회지, DVD, BD, 음반, 잡지, 스케치북 - 이 없다면 한때라도 누군가 어떤점에 대해 고민했다는 사실 조차 사라진다. 앤솔을 제외하고 내가 지금까지 냈던 책들은 디자인의 측면에서는 많이 고려를 한적이 없었기에. 대신에 금박 은박 가름끈과 기름종이, 반짝거리는 옵션들로 가득차있는 예전 회지들(처음엔 봉신연의, 나중엔 강철과 디그레이)들을 생각하며 글을 읽었다. 메이시님의 가로로 제본되었던 강철 회지 'Solomon Grundy'가 생각났지만 설마 이 책을 아는 분들이 이 글을 보실리가;

모과님의 시는 간만에 보는 셜록 연성이라 기분이 묘했다. 함기석 시인의 시집 '오렌지 기하학'을 좋아하는데,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읽었다. 영원한 환생. 막님의 만화는 왜죠 왜 뒷이야기가 없죠? 까치밥 다 썩어서 못먹는단다 어서 따먹으라고. 진국님의 연재소설내가아직TOS중반이라AOS를안본상태이니사실이런글써도되는건가싶긴한데 그저 체콥과 술루의 세기말적 배경 속 관계성에 대해 생각하며 읽었다. 

그리고 이테르님의 작품고찰은, 읽으면서 내가파는 사약을 생각했다. 쿠농 듣기만 하고 읽지를 않았지만 캐릭터와 커플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이번 잡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되었다. 내 사약은 1982년도 리들리 스콧 감독작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타이렐 회장/J.F.세바스찬인데 이 페어링에 미쳤을 때만 해도 환장을 하며 양웹을 뒤졌건만 연성은 커녕 파는사람 한명도 못봤다. 아마 평행우주에 있을테지만, 분명히 그것도 나겠지. 아무튼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에, 내 온 시간과 노력과 자금을 통해 이를 실체화시키는것이 연성이고 그래서 나는 '탈덕을 할 수 있다’ 라거나 '메이저(혹은 마이너) 부심부린다’, '그 페어링 아무 접점도 없는데 왜 팜?'이라는 말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골라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내가 행복해진다니,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대목에서 #물개박수

인터스텔라+트루디텍티브 만화리뷰는 솔직히 새벽에 읽으면서 배찢기는줄알았다. 말이필요없음, 놀란호 등장에서 일단 주금.

책상 사진 보면서 내 책상도 한번 보고. 음 난 정말 더럽군.

여담

비하인드북은 말이 필요없다. 이렇게 멋진 잡지 만드느라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대니 나오는 페이지와 <<지옥>> 페이지가 좋았다고한다. 코스터는 이미 쓰고있고, 연성노트는 지금 쓰는걸 다 쓰면 다음에 쓸예정.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만둔다 안한다 말은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행사에 가고 책을 사고 질질짜고 실실대고 그럴것이다. 이미이인생은망했어다시태어나는수밖에없다고그래봤자다음생애에서1세계에태어나도니는제3세계비주류연옌덕질할께뻔하다이눔아


끝으로 중학생때 나를 후조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긴 실친에게 이 글을 바친다. 후에 나는 녀석과 재수시절 우연히 지하철 열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었는데, 몇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 친구가 일반인이 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이년아 너혼자 헤테로의 천국으로 가고 나는 지옥불에 빠뜨리다니 어디 헨델음악이나 실컷 듣거라 나는 불구덩이 속에서 존잘님들 연성이나 씹고뜯고맛보고즐기면서 배뚜둥거리고 천년만년 살것이다. (2015. 0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