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성

[창작] 따라하다

평방미터 2017. 11. 21.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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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훑어 내렸다. 손가락 사이로 구불구불 흘러내린 머리칼은 그렇게 매끄럽지도, 반짝거리지도 않았지만 무척이나 탐이 났다. 

"나도 너처럼 머리를 기를까 봐. 염색도 하고." 

내 말에 거울 속의 그가 고개를 바로 하고 날 바라보았다.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난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원래 이런 걸. 넌 지금 머리가 제일 잘 어울려." 

"그렇지만 갈색 단발은 너무 평범하고 볼품없어." 

나는 내 머리를 몇 가닥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그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눈의 색깔, 머리칼의 움직임, 타원의 호를 그리며 움직이는 손 까지도. 

"요즘 입는 옷이 나랑 비슷하던 게 그 이유였구나." 

나는 내 머리카락을 보다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한쪽 손이 내 쪽을 향해, 아니 거울의 나를 향해 움직였다.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가느다란 손가락들에서 내게 없는 온기가 느껴졌다. 

"어제 후속 건 전달하는데 레이철이 갑자기 내 손만 쳐다보는 거야. 난 또 내 손톱이 나간 줄 알았거든. 그게 아니라 분명히 전엔 새끼손가락을 펴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계속 손가락이 펴져있어 신기해 그렇게 쳐다본 거라 하더라고." 

그는 싱긋 웃었다. 불쌍한 레이철, 눈썰미가 좋아서 생긴 일이라 일신상의 문제는 없겠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편집장이 잔뜩 안겨준 일감에 괴로워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그건 네 습관이었어. 내가 따라 하고 있던 거지." 

나는 내 손을 슬쩍 보았다. 

"좋아하는 습관은 아닌걸. 예전에 친구들이 많이 놀렸었어. 어울리지도 않은 공주 같은 짓이라고." 

"그러면 비긴 셈이네. 이렇게 하다간 난 네가 되고 넌 내가 되는 거야." 

"좋은 거래네." 

"그럼 그럼, 난 절대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아. 내 별명 잊었어?" 

그럼요, 서쪽 나라의 마녀님. 나는 귓가에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