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런던여행

2016 런던여행 제3부(6월 25일)

평방미터 2016. 7. 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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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토요일(제5일)

야스님의 모닝콜을 받고 여덟시 반 정도에 일어났다. 술이 약한 사람도 아니라서 일어나자마자 씻고 옷갈아입고 이것저것 준비를 마친 다음에 로비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0층 로비 벤치에 앉아 야스님을 기다리는데, 그저께 내 캐리어가 마음에 든다고 했던 미국인 룸메가 내게 민트 사탕을 한 움큼 주었다. 나한테 '너 민트 좋아하니?' 하길래 '응!' 이라고 했더니 잔뜩 줘서 여행 내내 맛있게 잘 먹었다.

드디어 야스님을 만나 현관을 여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쳤다. 뭐지? 하고 뒤돌아보니 그 미국인 룸메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였다. 덥수룩한 턱수염 때문에 좀 티모시를 닮아보였는데(그리고 난 런던에서 턱수염이 있는 남자는 전부 티모시를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하여간 티모시 너란 스파드), 그 친구가 나한테 'I like your shirts, it's Welcome to Night Vale.' 이라고 했었다. 사실 내가 여행 내내 입고다녔던 집업 후드는 미국 팟캐스트 드라마 웰컴 투 나잇베일에 등장하는 보안관의 비밀경찰Sheriff's Secret Police 공식 집업후드 굿즈라서 보통 한국에서 입고다니면 아무도 모른다. 근데 난 그의 말을 처음에 당황해서 '네 셔츠 참 마음에 든다' 정도로만 이해하고는 '고마워' 하고 걍 숙소를 떠나버렸던것ㅋㅋㅋㅋ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잇베일이라고 말한게 아무리봐도 내가 자기가 좋아하는 덕장르 집업후드를 입고있어서 반가운 나머지 말을 건 거였다. 허허 맞장구라도 쳐줄걸 ALL HAIL THE GLOW CLOUD~ 이러면서, 뭐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미 기차는 떠났고. 야스님도 보통 사람들이 친한 사이 아니면 그렇게 어깨를 쳐서 아는척을 안하는데 그 사람 표정이 딱 덕친 만난 표정이었다고 하셨다.

아무튼 그렇게 야스님이랑 출발해서 우리는 오늘 볼 예정이었던 연극 <쥐덫> 데이티켓을 우선 예매하기로 했다. 그런데 세인트 마틴 씨어터에 찾아가니, 줄 서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그 근처에 뮤지컬 마틸다 공연을 하는 캠브릿지 씨어터는 아침부터 사람이 큐잉을 잔뜩하던데 말이었다) 해서 우리는 야스님이 추천하는 커피가게 몬마우스(몬머스?)에 일단 가기로 했다. 하긴, 쥐덫은 올해가 시작한 지 64년이 되었을 정도로 장기극이긴 했다. 나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 '쥐덫'을 연극 무대로 꾸민다는것 자체가 궁금해서 간 것도 있었고.

사실 나는 야스님께도 이미 얘기했었듯이,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커피의 맛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내가 홍차를 좋아하는건 물론 그 맛과 향도 있지만, 저녁에 마셔도 잠을 잘 잘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커피도 과테말라 안티구아 정도만 내가 먹었을 때 제일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종류고.

아무튼 그래서 야스님이 이 가게에 꼭 가야한다고 하셨을 때 의아했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친구가 커피콩을 사다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고 해서(가게 이름을 얘기했었는데, 당시엔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매우 커피가 맛있는 집이라고만 했던것만 기억해냈다), 가는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처음 가게를 딱 봤을땐 '생각했던 것보다 가게가 작네' 싶었다. 가게는 격자 창문이 옆에 나 있었고 오른쪽에는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바깥에는 작은 나무 벤치가 있었는데, 바깥에서 봤을땐 가게가 작아서 아마 앉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여기에 앉아서 마시는가보다 했다(나중에 그게 가게 안쪽에서 마시려고 기다리는 줄이라는걸 알았다). 아무튼 들어가서 보니 빵과 초콜릿을 팔고, 앞에는 계산하는 기계가 두 개 있고 커피콩을 담는 저울이 세 개 정도 있고 계산하는 점원들 뒤로 커피콩들이 담긴 장소가 있었다. 계산대 오른쪽에는 칠판이 걸려있었는데, 거기에 커피 종류와 금액이 적혀있었다. 그보다 안쪽에는 앉는 자리가 있었는데, 중간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걸 보니 그 아래에도 뭐가 있는것같긴 했다(어쩌면 창고가 있을지도).

정말로 나는 커피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야스님께 어느게 제일 맛있냐고 물어보았다. 야스님이 '라떼도 괜찮고 플랏화이트[x]도 괜찮아요. 여긴 다 맛있어요.'하시길래 그 많은 커피들 중에서 생소한 이름인 플랏화이트를 먹기로 했다. 플랏화이트는 2.7파운드! 안쪽에 자리가 있냐고 물으니 자리가 있지만 합석해야 한다길래 그래도 괜찮다고 얘길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플랏화이트를, 야스님은 라떼를 시키고는 커피 콩 종류 중에 몇가지 시음해 볼 수 있는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점원이 두 가지 종류의 커피콩을 블랙으로 내려서 주었다. 잔에 색깔 라벨을 붙여서 구분하기 편하게 주어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주문한 플랏화이트와 라떼가 나오고, 마셔보았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든 생각은 '이게 뭐지?' 였다. 정말 맛있었다. 내 표정 변화를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본 야스님은 나중에 이걸 동영상으로 찍지 않은걸 후회할 정도였다. 아니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라떼보다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더한데, 커피의 맛과 향도 더했다. 야스님이 시키신 라떼도 먹어봤는데 헐! 라떼도 맛있었다. 보통 라떼는 커피와 우유가 따로노는순간 망하는데(지금까지 그냥 마셨던 라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긴 정말 커피와 우유가 조화롭게 녹아들어 있었다. 원래도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지 않는 사람이지만, 몬마우스의 플랏화이트와 라떼는 설탕이 필요없었다. 그 자체로 너무 맛있었으니까.

그런데 야스님이 내게 티스푼으로 설탕볼에 담겨진 황갈색 설탕을 떠서 먹어보라고 주셔서 혹시나 싶어 먹어봤다. 난 처음에 설탕이 흰색에 림에만 푸른색이 둘러져있는 그릇에 수북이 담겨져 있길래 그게 설탕인지도 긴가민가했다.

나는 세상에 설탕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제1세계 인간들! 이런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이런 맛있는 설탕을 먹고! 내가 이렇게 분개해하니깐 야스님이 설탕은 코스타리카 산이라며 이건 아프리카에서 온 거에요(나중에 알고보니 코스타리카는 중앙아메리카에 있었다. 카페인 하이와 슈가 하이가 겹쳐서 그만...)! 제1세계가 아냐! 라고 하셨지만 아니 나는 한국에서 이런 맛있는 설탕은 듣도보도 못했다고 억울해했다. 내가 아는 맛있는 설탕은 앵무새 설탕이 전부였는데, 이 맛난 황갈색 유기농 설탕은 정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계속 맛있다고 연발을 하며 두 종류의 블랙 커피도 마셔보고, 어느 커피콩을 사갈건지 결정을 했다. 카라멜 향이 나는 쪽이 더 마음에 들었길래, 친구들에게 주려고 두 봉지를 샀다. 사실 결제하면서 유기농 설탕도 사고(500g씩 포장해서 팔고있었다) 내 것도 살까 싶었는데, 나는 집에 커피 내려먹는 장비가 있는것도 아니고 캐리어에 다 들어갈 지 걱정이 되어서 일단 친구들 것만 샀다.

플랏화이트를 마시는 동안, 그리고 가게를 나오면서 내내 야스님에게 왜 이 가게는 우리집에서 5500마일이나 넘게 떨어진 곳에 있는거냐는 둥 나한테 왜 이렇게 맛있는 커피집을 가르쳐준거냐고 적반하장으로 굴었지만 이게 다 기뻐서 그런거고...이후로 야스님이랑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여행 기간 내내 아침마다 이 커피집을 들르게 되는데. 보니까 출근시간에는 사람이 진짜 많았고 우리가 간 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나마 사람이 적은거였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또 몬마우스의 플랏화이트가 마시고싶다. 내가 커피콩을 사오지 않은 것도 콩을 사와봤자 우리집에서는 이 플랏화이트를 마시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엉엉...흔히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이 황금비율이니 어쩌니 하는데 이렇게 커피콩이 맛있으면 비율이고 뭐고 다 소용없다던 야스님의 말이 몬마우스를 갔다온 이후로 백번천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런던 가시는 분들은 꼭 세븐다이얼스에 있는 몬마우스 커피 컴퍼니에 가서 아무거나 커피 한 잔이라도 드시길 바란다. 직원들이 매우 친절해서 원하는 맛을 얘기하면 커피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시음도 할 수 있다. 아 나 어떡함 이 밤에 또 커피마시고 싶어...

아무튼 그렇게 나와서 다시 생 마틴 씨어터에 가니, 여전히 사람이 없고 현관 앞에 '옆 극장으로 가서 표를 사시오'라고 쓰여있길래 우린 옆에 있는 극장에 갔다. 스톨석 A역 정중앙 자리를 끊었는데 티켓당 28.5파운드! 만족스러워 하며 나오는데 오른쪽에 보이는 레스토랑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알고보니 옵빠가 예전에 자선행사로 웨이터를 했던 레스토랑이었다[x]. 여기에서까지 옵빠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나란 수니...

지나가다가 친구가 좋아하는 마카롱 가게인 피에르 에르메가 있어서 찍어보았다.

그리고 예전에도 런던왔을때 사진으로만 보고 끝내 골목을 못찾아서 보질 못했던 닐스 야드 본점도 찾았다! 물건을 사진 않았지만 건물과 골목이 너무 예뻤다.

다음에 간 곳은, 아마 비비씨 드라마 셜록을 보셨던 분이면 알텐데 #102에서(맞나?) 셜록이 어떤 여자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건네받은 다리 밑이다. 야스님은 또 여길 어떻게 찾으시고...그런데 이 곳에서는 런던아이도 빅벤도 아주 잘 보였다. 드라마에서 여자가 앉아있던 벤치에 앉아 나도 기념사진을 찍고, 반대편 강가를 봤는데, 저 멀리에 보이는 강가 맞은편은 바로 #102에서 익사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 강가였다. 런던 여기저기가 촬영지이지만 카디프에서 촬영된 곳도 많다고 했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야스님이 콕콕 집어주시는 촬영지를 보고 너무 신기했다.

다리 위에서 보니 런던아이와 빅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한눈에 보였다. 더 이상 왕족이 사는건 아니지만, 나는 웨스트민스터 건물을 궁전이라고 부르는걸 좋아한다. 

다리를 건너다가 야스님이 쨘! 했는데 보니깐 런던아이 가운데에 빅벤이 뿅 하고 들어가 있었다. 이런곳은 또 어떻게 찾으신건지 너무 신기했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맞은편을 보니 다음주에 연극을 볼 내셔널 씨어터NT가 떡하니 있었다. 반갑다며 사진을 찍고보니 NT 건물 바로 위에있는 구름이 아기 공룡 같았다.

여기도 셜록에 나왔던 장소인데,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던 그곳이다. 지금은 다른 그래피티로 뒤덮여 사라졌지만. 런던 시장이 여기만은 어떤 차별이나 비하발언만 아니면 그래피티를 할 수 있게 허용한 장소라고 한다. 나는 토리의 금발성성이 친구를 떠올렸지만, 그는 레퍼렌덤 이후로 주가가 오른건지 떨어진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여기저기 볼 것도 많아서 거의 트위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영치 생각을 템즈강변 바람에 날려버렸다.

그다음에 우리는 예의 셜록과 존이 건너갔던 헝거포드 브릿지를 건넜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헝거포드 브릿지는 오른쪽에 보이는 철도교를 말하는거고, 이 헝거포드 브릿지 양 옆에 나 있는 사람들이 건너는 다리는 골든 쥬빌리 브릿지스라고 한다(다리가 두 개니 복수형!). 가는 동안 다리에서 쉬고있는 비둘기들을 보고있자니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고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하니 프라이드 인 런던 당일 답게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6색깃발을 여기저기에 두른 채 있었다. 우리도 입장을 해서 분수대에 걸터앉아 무대를 보는데, 때마침 드랙퀸들이 신나게 Don't let them drag you down 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이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도 부르고, 굉장히 신났다. 사진은 저렇게 찍혔지만, 날씨가 정말 좋아서 해가 쨍쨍 내리쬐는데 햇볕이 덥다 못해 따가웠다. 급히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야스님과 나는 한동안 무대를 보며 쉬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애프터눈티를 먹기 위해 왈라스 컬렉션으로 가는데, 생각치도 못하게 가는 길이 퍼레이드 길이었다. 반갑기도 해서 조금만 보고 간다는게 열심히 보긴 했다. 사람도 엄청 많았고 다들 축제분위기였다. 한국 퀴퍼가 혐오세력과 LGBT 지지자들의 본격적인 대결같은 분위기라면, 런던 프라이드는 좀더 다같이 놀자! 같은 축제 느낌이었다.

퍼레이드 맨 앞 행렬이 오면서 다같이 자국의 국기나 아니면 깊이 관련있는 국가의 국기를 들고 나왔는데(나중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까 자국민이 아닌 경우라도 가족이 그 국가에 있다던가 아무튼 깊이 관련이 있는 사람이면 깃발을 들고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의외로 북한 인공기가 있어서 놀랐다. 태극기는 굳이 찾지 않아도 눈에 잘 띌텐데, 내가 못본건지 아무튼 나는 보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니깐 내 앞에 펜스잡고 서 있던 여자 두 명이 행렬을 향해 미친듯이 반짝이 가루를 뿌리는데 하필 바람이 맞은편에서 불어와서 반짝이 가루가 나한테 다 쏟아졌다. 평소라면 으악 이게뭐야 라고 나도 화가 났을텐데, 축제분위기이기도 했고, 퍼레이드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그 여자들 앞으로 다가가 마치 반짝이를 내게 뿌려달라는 듯이 두 팔을 벌리며 빙빙 도는게 너무 웃겨서 그냥 나도 신나게 반짝이를 맞으며 행렬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조금 뒤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더 잘 보이길래 그렇게 행렬을 조금 더 보다 갔다. 개중에 Women's Equality Party도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무튼 그렇게 신나게 퍼레이드 행렬을 구경하고 간 곳은 왈라스 콜렉션, 우리는 애프터눈티를 먹기 위해 간다! 둘이서 먹기엔 양이 좀 많을거라는 야스님의 말에 애프터눈티 하나와 크림티 하나를 시켰다. 차는 랍상소우총과 얼그레이를 시켰다. 야스님이 주전자를 가리키는데 난 무슨뜻인지 몰랐다. 알고보니 주전자가 랑야방에서 나온 주전자와 뚜껑 손잡이를 제외하고 정말 똑같이 생겼던 것! 괜히 반갑기까지 했다.

애프터눈티는, 정말 맛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먹은 애프터눈티도 맛이 별로였던건 아니지만, 여기는 샌드위치 에서부터 스콘과 잼, 클로티드 크림(이게 압권이었다. 클로티드 크림을 모르는 자여, 크림티에 대해 얘기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작은 머핀과 초콜릿 쿠키까지 완벽했다. 안뜰에 유리 지붕을 얹어 만든 장소라 햇볕이 쨍 내리쬐거나 비가 오면 정말 멋지다고 했는데, 우리가 앉아서 맛나게 애프터눈티와 크림티를 먹는 동안은 비가 오진 않았지만 일어나려고 하니깐 비가 조금 내렸다...못된...그래도 여기에서 먹은 애프터눈티는 잊지 못할 것이다.

애프터눈티를 다 먹고 나는 블소님에게 랑야방 가제본을 빌려드려야 했기 때문에 만나러 가는 김에 미임파5 촬영장소중 하나인 브롬턴 묘지로 가기로 했다.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가는 버스에서 나는 야스님의 명루좌담회 초벌원고를 육성으로 들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는 위장자를 볼 때만 해도 명장관이라는 인물이 굉장히 먼치킨적이고 현실에서 있을 법한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5중간첩이었던 인물도 있었고 명루라는 인물이 여러 직위를 겸직하게 된 게 주불해와 왕정위의 큰 특징을 빌려온 거라는걸 듣고 나니 작가가 명루라는 인물을 설정할 때 과장한게 아니라 오히려 축소했다는게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한국의 친일파와는 다르게 중국의 한간은 그들 나름대로의 애국의 명분이 존재했고 이는 왕정위가 장개석에세 '당신은 쉬운 길을 가지만 나는 어려운 길을 갑니다,'라고 했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거였다. 아무튼 야스님의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새 브롬턴 묘지에 도착했고, 블소님과 만나 랑야방 가제본 책을 빌려드린다음 우리는 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묘지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묘지의 개념과는 다르게, 여긴 좀 공원같은 분위기였다. 아무리해도 영화에서 나온 건물과 비석은 맞는데 구도가 잘 맞지 않아 보니 카메라와 렌즈를 당겨 찍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일사 파우스트가 지나갔던 그 길을 걷고 사진을 찍었으니 대만족!

닥터후 블링크 에피소드와 우는 천사가 생각나서 찍어봤다. 지나가는동안 눈을 반 쪽은 뜨고 반 쪽은 감았다. 

블소님과 헤어져서 다시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도, 위장자 얘기들을 야스님과 잔뜩 했다. 런던에서의 대륙 드라마 덕톡이라니 묘하게 핀트가 안맞는것처럼 보여도, 덕 두명이 있으면 천군만마가 부럽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서 생 마틴 시어터로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촉박해 우리는 근처 프렛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사서 급히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덕투어에 열중한 나머지 정말 밥을 대충먹었구나 싶다. 하지만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여...나도 맛투어 하러 런던 온 게 아니라. 하지만 또 먹은걸 나열해보면 아예 못먹은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도 잘 먹고다녔기 때문에!

<쥐덫>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크리스티의 단편을 그대로 따온 것 같았지만, 인물이 한 명 추가되고 뒷부분 내용도 조금 각색되었었다. 어쩐지 내가 읽은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싶었는데 일부러 그렇게 바꾼 모양이었다.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지만, 그 중에서도 크리스토퍼 렌 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참 잘했다. 극중에서 렌은 가장 범인으로 오해받는 인물인데, 특유의 장난스러운 행동이나 말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쥐덫> 내 별점: ★★★

밖으로 나왔는데 목이 너무 아팠다. 알고보니 목감기에 걸린거였다. 아마 피곤해서 그런것같아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오렌지 주스 큰 걸 하나 샀다(식료품비가 정말 저렴해서 오렌지 주스 작은 병이나 1리터 짜리나 그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질 않아 큰걸 사는게 더 이득이었다. 여행 내내 두고두고 먹는다는 생각으로 큰걸 샀는데 정말 잘한것같았다). 야스님은 내가 걱정되셨는지 그렇다면 나머지 밤 일정은 취소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나도 처음에는 동의했지만, 순간 너무 아쉬웠다. 여기까지 와서 못보면 다음에도 못볼텐데! 하는 생각에 그래도 보러가자고 마음을 바꿨고 우리는 마저 런던의 야경을 보러 갔다.

프라이드 날이어서 그런지 NT도 런던아이도 모두 총천연색 무지개였다. 평소에는 빨간 불빛이 켜진다는 런던아이가(나중에 알고보니 이게 코카콜라에 인수되어서 조명을 붉은색을 키는거였다) 6색으로 빛나는게 참 멋졌다. 야스님과 나는 미임파5에서 애틀리와 일사가 만나는 벤치를 찾아 거기에 앉아서 맞은편에 빛나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찍었다. 이 근처는 특히 이상한 사람도 많아서 나한테 곤니치와! 라고 무척이나 쾌활하고 해맑은 1세계 여자아이도 있었는데(그 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의 손을 잡고 재빨리 지나가는걸 보니 음 말 다 했다), 워낙 빨리 지나가서 뭐라 대꾸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런던아이를 계속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여행 5일차의 일정이 모두 끝났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